2009년 05월 29일
분향소를 '구경'가다
목요일인 어제 마지막 분향을 하는 사람들이 서울 각지에 몰렸던 듯 하다.
본좌는 노통의 극 추종 1, 일반 추종 2, 중립 1 과 함께 덕수궁 분향소에 갔다.
일국의 前 대통령의 죽음은 파급이 컸다.
대략 10만명은 모이지 않았을까...
언제나 감정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냉정한 시각으로 관찰하는 본좌의 성격때문에
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.
대부분이 前 대통령의 서거를 예우하기 위해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졌으나
정치적인 선동을 하는 사람, 그것보다도 더욱 과격한 벽보 등은
서울 광장에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경찰의 행동을 납득하게 할 정도였다.
5시간도 더 넘게 기다려야 할 듯한 긴 줄은 분향을 포기하게 하기에 충분했다.
노무현 前 대통령의 죽음은 부정을 저지른 주위 사람들이 몰아세웠다고 생각한다.
정말로 하늘에대고 한점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을 리 없다.
높디 높은 자존심과 상황에 휩쓸린 거짓말이 이런 결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.
높은 자리는 본인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마저도 변하게 만드는 모양이다.
초심을 잃지 말도록 하자.
본좌는 노통의 극 추종 1, 일반 추종 2, 중립 1 과 함께 덕수궁 분향소에 갔다.
일국의 前 대통령의 죽음은 파급이 컸다.
대략 10만명은 모이지 않았을까...
언제나 감정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냉정한 시각으로 관찰하는 본좌의 성격때문에
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.
대부분이 前 대통령의 서거를 예우하기 위해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졌으나
정치적인 선동을 하는 사람, 그것보다도 더욱 과격한 벽보 등은
서울 광장에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경찰의 행동을 납득하게 할 정도였다.
5시간도 더 넘게 기다려야 할 듯한 긴 줄은 분향을 포기하게 하기에 충분했다.
노무현 前 대통령의 죽음은 부정을 저지른 주위 사람들이 몰아세웠다고 생각한다.
정말로 하늘에대고 한점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을 리 없다.
높디 높은 자존심과 상황에 휩쓸린 거짓말이 이런 결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.
높은 자리는 본인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마저도 변하게 만드는 모양이다.
초심을 잃지 말도록 하자.
# by | 2009/05/29 16:14 | 트랙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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